||1원래는 엄청나게 거창한 사용기를 쓸려고 계획했었지만, 물건이 예상 외로 폭탄인데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짐을 싸야하는 상황인지라, 그냥 간단한 사용기만을 올리게 됐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미디 키보드란 무엇인가.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소리도 낼 수가 없고, 미디 장치에 연결함으로서 미디 음원을 통해 연주를 하는 물건입니다.

미디 키보드가 필요한 이유는 연주할때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곡을 할때도 마우스로 음표를 하나하나 찍는 것보다 피아노 건반처럼 누르는게 더 편하지요.

거기에 덧붙여서 이것은 'USB'이기 때문에 USB 포트를 통해 컴퓨터와 직접 연결할 수 있습니다. 미디 포트가 아니라 USB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입니다. 고가의 미디 인터페이스가 필요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외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길더군요. 어느정도로 긴가 하면-



일반 피아노 건반보다도 크기가 약간 더 큽니다.



건반은 49키입니다. 고무 재질이라서 이렇게 구부리거나 돌돌 말아서 보관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자 단점. 나중에 나옵니다).



뒷쪽에는 볼거 없습니다. 분해를 할 수 없게 본드로 붙였더군요.



두께는 상당히 얇은 편입니다. 그냥 고무판 두개를 겹쳐놓은게 전부?

재질이 고무이다보니, 방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가 지저분하게 보관해서 저런게 아니라, 원래 저렇습니다. 조악한 끝마무리 때문에, 물에 넣으면 순간접착제가 다 풀어지지 않을까 의심되는군요.

내용물은 사용설명서 한장이 고작입니다.



바로 이것 뿐입니다. 사용 설명서에는 홈페이지 주소같은것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중국식 가내수공업 제품입니다.



저기 보면 저런 프로그램들을 같이 주는것처럼 보이지만, '저런 프로그램에서 쓸 수 있다' 정도입니다.


드라이버 시디 한장 안 주는 이유는, 그냥 꽂으면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USB 기기로서의 장점을 최대화한 것으로서 칭찬해 주고 싶지만, 지원하는 운영체제가 오직 윈도우즈 XP 뿐이라고 설명서에 나와있기 때문에 욕을 해주고 싶어졌습니다.

어쨌건, 꽂으면 알아서 잡습니다.



저기 보면 USB 오디오 장치라는 놈이 있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마소 드라이버라면 비스타에서도 쓸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정말 별것 없습니다.



드라이버 설치 도중에 미디 음악 재생 기본장치를 자기 멋대로 'USB 오디오 장치'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설정을 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음원도 없는 주제에 음악을 재생하겠다니 실로 발칙하기 그지없지요.



여기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출력이 2개, 입력이 1개 잡힙니다. ...하지만 출력은 애시당초 할게 없는데 왜 나오는지 모를 일입니다.



크리에이티브의 번들 키보드 프로그램의 옵션입니다. 잘 잡습니다.



케이크워크 소나 4 프로듀서 에디션의 미디 디바이스 설정 부분입니다. 역시 잘 잡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뒷마무리가 허술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물건처럼 보이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걸 160위안에 운송비 20위안 줘서 180위안을 주고 샀는데, 한화 2만2천6백원인 셈입니다. 그럼 돈값을 하느냐? 못합니다.


제일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이것의 키감이 엄청나게 구리다는 것입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면 아시겠지만, 고무판 두장이 겹쳐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돌돌 만다던가 접는다던가 구부린다던가 할때의 그 느낌이나 소리는, 고무판 사이에 비닐 필름이 놓여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키보드(여기서 말하는 키보드 말고, 그냥 컴퓨터용 키보드 말입니다)를 뜯어보신 분이시라면 잘 아실텐데, 기계식이나 러버 돔같은 극과 극의 제품을 제외하고, 보통 멤브레인이나 펜타그래프 키보드는 키를 누르면 고무로 된 키캡이 2장의 회로 접점을 접촉시키는 방식입니다.

바로 그 키보드에서 3장의 비닐 필름으로 이루어진 회로를 사용하지요. 회로와 회로 사이에 전기 통하지 말라고 한장 더 넣어서 3장. ...바로 이 'USB 미디 키보드'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매우 강한 의심이 듭니다.



문제는 그냥 고무판-회로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키감이 매우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키를 인식하는 부분은 상당히 넓습니다. 저 키의 거의 끝에서 끝까지 아무데나 눌러도 인식이 되는데 비해, 키감은 개판입니다.

그냥 가볍게 '누른다' 수준으로 치면 절대로 인식이 되지 않고, 힘을 줘서 '짓누른다'라던가 '민다'라던가 '내려친다' 수준은 되어야 인식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냥 고무판-회로이기 때문에 누르면 누른갑다 이런 느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찌됐건 키를 '누르면' 바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허공에 삽질하는 정도의 기분은 들진 않지만, 실물을 직접 만져보게 한다면 이것을 살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지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방식은 또다른 문제가 있는데 바로 '연타'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키를 눌렀다-뗐다-하는 동작을 확실하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지요.


두번째 문제는 기본 벨로시티 인식 값입니다.



묘하게 소리가 작게 들리길래, 이상하다 싶어서 마우스로 찍어봤더니 제대로 들리더군요. 녹음 상태로 바꿔놓고 보니 기본 벨로시티가 64더군요. 참고로 다른 장치들이나 마우스로 찍을 경우는 96입니다.

96이 업계 기본값(?)이라는걸 모르고 만든건지, 아니면 드라이버를 만들때 삽질한건지 모르겠으나, 별거 아닌 실수(?) 때문에 엄청나게 사용이 번거롭게 되더군요. 기본값에 맞출려면 일일이 조정해줘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럼 이제 결론입니다. 한국에서도 이걸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처럼 가격에 혹해서 지르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절대 비추천입니다. 이게 가격이 2만2천원이라고 했는데, 이거 살 돈으로 그냥 하루 노가다 뛰어서 돈을 10만원까지 모은 다음, 다른걸 사는걸 적극 추천합니다. 옥션만 봐도 7~8만원대에 미디 입출력 되는 디지털 피아노-키보드 흔해 빠졌습니다. 그런거 하나 지르고 USB 미디 인터페이스 하나 지르는게 훨씬 이익입니다.

구린 키감 그 하나만으로도 이 키보드의 모든 장점들을 완벽하게 까먹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이것보다 키 수도 더 많고, 음원도 내장하고, 자체 어댑터도 쓰는 상위모델도 있던데 역시 키가 똑같기 때문에 마찬가지 이유로 쓸만한 물건이 못됩니다.

결론: 냄비 받침으로나 쓸까 생각중입니다. 애들 장난감으로 쓰기에도 셋팅이 어려워서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