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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릭스

조회 수 5338 추천 수 0 2009.09.02 19:50:03
[레벨:18]id: piloteerpiloteer *.195.176.193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cyrix.jpg

사이릭스(Cyrix)사는 1988년도에 Richardson에 의해 창사되었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작사이다. 이 회사는 텍사스에 위치했었으며 고성능 80286과 80386의 수학연산용 코프로세서들을 만들엇었다. 이 회사를 창사한 사람들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과거 스테프들이었으며, 고로 이 회사는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와 끝까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였었다. 창시자중 하나인 Jerry Rogers가 공격적으로 엔지니어들을 고용하고 밀어댄 덕에, 이 회사는 30여명밖에 안 되지만 매우 강한 실력의 디자인팀을 가질 수 있었다.

이 회사는 97년 11월 11일에 네셔널 세미컨덕터사와 합병되었다. 


사이릭스의 퍼스널 컴퓨터용 첫 상품은 x87호환 부동소수점연산 코프로세서였다. (과거, 286이나 386시절에는 287이나 387이라고 부른 부동소수점 연산을 위한 추가 프로세서를 사용하곤 했다.) 사이릭스의 FasMath 83D87과 83S87이 1989년에 발표되었었는데, 이 386호환 코프로세서는 인텔 80387에 비해 50배나 나은 성능을 보여주었었다. FasMath 82S87의 경우 287호환 코프로세서였으며 83D87이 개발된 후에 만들어졌으며 1991년부터 판매되었다.


1992년에 발표된 486SLC와 486DLC의 경우, 이름과는 다르게도 386SX와 DX와 핀 호환이 되었었다. 하지만 그들은 486만 가진 명령어셋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L1캐쉬를 내장함으로서 사실상 386과 486사이의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386에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려던 유저들의 선택지가 되어 주었으며 386보드를 486보드로 올려서 팔고 싶어하는 딜러들도 애용하였다. 이 칩은 사실상 486의 성능을 내지 못한 데에다 햇갈린 네이밍에 의해 비판받았었다. 이 때, 인텔은 SL라인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고 IBM은 SLC라인이란 걸 가지고 있었는데 이 무엇도 사이릭스의 486SLC와는 연관이 없었다. 이 칩은 주로 저가형 컴퓨터나 노트북에 사용되었었다.


사이릭스는 차후 사이릭스 486SRX2와 486DRX2를 내놓았는데, 이는 SLC와 DLC의 클럭을 두 배로 늘린 것이었으며, 역시 386에서 486으로 업그레이드하려던 유저층을 공략하였다.


결국 사이릭스는 인텔의 486과 핀이 호환되는 CPU를 내놓는 데 성공했으나, 이는 amd의 486들에 비해 성능이 밀렸으며 결과적으로 이들은 업그레이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된다. 사이릭스가 실패하는 동안 AMD는 큰 OEM - 특히 에이서와 컴팩 - 에 CPU를 성공적으로 납품하였다. 하지만 몇몇 유저들은 여전히 사이릭스의 칩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50,66,80Mhz 486 CPU들의 요구전압이 5V였으며 AMD의 3.3V와는 달리 초기형 486메인보드들에서 호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95년에, 펜티엄 호환 cpu들이 아직 판매되지 못했을 때, 사이릭스는 마치 486때와도 똑같은 방법으로 Cx5x86을 내놓았다. 이는 486소켓을 사용했으나 100,120 혹은 133Mhz로 작동하였었고, 인텔 펜티엄의 75Mhz수준의 속도를 내었었다. AMD의 Am5x86의 경우 이 때에는 486의 고클럭 버전에 불과하였으나, 사이릭스는 그나마 조금이나마 펜티엄의 기능을 CPU에 포함시켰다.

1995년, 사이릭스는 자사의 가장 잘 알려진 칩인 6x86(M1)을 내놓았다. 이 프로세서는 기존의 사이릭스의 CPU와 비슷했으나, 인텔 동급 CPU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였다. 6x86 프로세서들은 P166+등의 이름을 가졋었는데,이는 펜티엄 166Mhz보다 빠르다는 뜻으로, AMD가 최근 사용했던 레이팅법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CPU들은 인텔의 같은 클럭의 CPU들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었다. 사이릭스는 이 성능을 이용해 CPU를 더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었으나, 6x86의 수학 코프로세서(부동소수점 연산 부분)가 인텔 펜티엄에 미치지 못하자 이를 포기하였다.  이는 명령어 파이프라이 부족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FPS게임이 시장에 늘어남에 따라, 3D그래픽이 더더욱 요구되자 이 문제는 속도에 발목을 잡았고, 어쩔 없이 사이릭스는 자신들의 CPU의 가격을 낮추게 된다. 이 CPU들은 컴퓨터 매니아들과 소형 컴퓨터 가게들을 파고들었으나, AMD와 달리 OEM시장을 쥐지는 못하였다.


후에 나온 6x86L은 6x86을 개선해 전력소모를 줄였고, 6x86MX(M2)는 MMX명령어들이 추가되고 L1캐쉬의 용량이 증가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사용한 'MII'는 사실상 6x86MX였으나 이름을 바꿈으로서 펜티엄2와의 경쟁을 유리하게 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6년에, 사이릭스는 MediaGX라는 CPU들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모든 컴퓨터의 중요한 프로세서 - 소리,비디오등 - 을 한 칩에 눌러넣은 제품이었다. 이는 5x86기술에 기반하였으며 120Mhz 혹은 133Mhz로 가동하였었다. 성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이의 저렴한 가격은 이 프로세서를 성공시켰다. 이 MediaGX는 사이릭스의 첫 성공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컴팩이 저가형 프레자리오 2100과 2200에 채택하였었다. 또한 팩커드 벨 사가 이 CPU를 채용하엿고, 사이릭스의 이름이 유명세에 탐에 따라 이머신즈도 이를 채용하게 되었다.


미디어GX의 후기 버전들은 333Mhz에 가동하였으며 MMX를 지원하였었다. 또한 비디오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다른 칩이 추가되었었다.


사이릭스는 펜티엄4시절의 AMD와 같이 PR레이팅을 썼었는데, 이는 6x86이 인텔의 펜티엄에 비해 더 효율적이었을 때 경쟁을 위해 사용되었었다. 사이릭스의 CPU는 명령어당 효율이 인텔 펜티엄보다 좋았으며 때때로 더 빠른 버스 속도를 보여주기도 해서 사이릭스는 AMD와 함께 PR시스템이란 걸 만들어 자신들의 상품을 인텔과 비교하게 되었다. 6x86은 일반적으로 133Mhz에서 작동하였으나 이들은 166Mhz의 펜티엄보다 조금 빨랐었는데, 그래서 사이릭스는 이 칩에 P166+라는 이름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인텔이 P166과 P200의 이름을 다른 용도로 이미 점유하고 있었던 지라, 다음 사이릭스는 다음부터는 이름 끝에 R을 덧붙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PR레이팅은 결국 문제에 부딛치게 되는데, 사이릭스의 칩들은 인텔의 칩들에 비해 부동소수점 연산이 느렸으며 이를 요구하는 새로운 3D게임들이 나옴에 따라 결국 PR시스템은 힘을 잃게 되었다. 또한, 사이릭스 칩들은 주로 저가형 컴퓨터에 사용되었는데 이에 장착된 사운드카드,그래픽카드,모뎀등이 인텔 시스템에 비해 저성능인 경우가 많아 결국 이들의 시스템은 인텔시스템에 성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AMD는 K5초기에는 잠깐 PR레이팅을 사용하였으나, 금방 이를 중지하였으며 나중에 에슬론이 나오고 나서야 이를 다시 사용하게 된다.


사이릭스는 자신들의 CPU를 위한 공장이 없었는데, 이들은 언제나 칩을 디자인해서 외주 공장에 제작을 맡겼었다. 초기에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공장들과 sgs톰슨(현 stm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사의 공장을 사용하였으나 1994년에 TI와의 계약이 파기되고 SGS톰슨에서의 제작이 문제에 부딛치자 당시 공정으로 인텔과 경쟁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IBM으로 돌아섰다.

IBM과 사이릭스가 계약을 맺음에 따라, IBM사는 사이릭스사의 CPU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판매할 권리를 얻었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가 사이릭스의 명성을 높이는 데에 한몫 할 거라 생각하였으나, IBM은 계속 자신들의 주력모델엔 인텔과 AMD만을 채용하였고, 사이릭스는 미국에서는 판매되지 않은 몇몇 저가형 컴퓨터에나 사용하였다. 대신,IBM은 6x86칩들을 오픈마켓에 판매함으로서 되려 사이릭스사와 경쟁하였고, 때때로 사이릭스사의 CPU의 가격에 되려 악영향을 끼치곤 하였다.

AMD와는 달리, 사이릭스는 인텔사가 디자인한 CPU를 한번도 재대로 된 라이센스하에 판매하지 않았었다. 사이릭스의 CPU디자인은 인텔 CPU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함으로서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사이릭스의 CPU들은 인텔 CPU와는 전혀 다른 내부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AMD의 경우 인텔 CPU의 제조 경험을 참고함으로서 내부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 부분이 많았다.) 인텔은 이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서 사이릭스와 몇년간 법정공방을 펼쳤었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사이릭스에게 패소하였고 사이릭스는 자신들만의 디자인을 사용한 x86 CPU들을 판매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사이릭스는 x86을 인텔 라이센스를 가진 파운드리에서만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TI,SGS 톰슨,IBM등의 회사만 파운드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사이릭스는 되려 인텔의 펜티엄프로와 펜티엄2가 사이릭스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내었다. 그들은 전원관리와 레지스터 재명명 기술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했으며, 이 소송은 오래 끌 듯 하였으나 두 회사의 크로스 라이센스 합의로서 금방 해결되었다. 결국 인텔과 사이릭스는 각자의 기술에 대해 모든 권리를 공유하게 되었다. 

1997년 8월, 여전히 소송이 진행중이던 때, 사이릭스사는 네셔널 세미컨덕터사에 합병되었다. 이는 사이릭스에게 추가적인 마켓팅 가능성과 네셔널 세미컨덕터사의 칩 공장에 대한 사용권리를 주었다. 네셔널 세미컨덕터사는 RAM등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이는 CPU의 생산과 매우 비슷했으므로 사이릭스는 결과적으로 IBM과의 계약이 종료됨에 다라 네셔널 세미컨덕터의 공장으로 CPU를 제작하게 되었다. (네셔널 세미컨덕터는 x86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합병은 사이릭스에게 자금적인 기반과 더 나은 개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이 합병은 사이릭스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는데, 네셔널 세미컨덕터사는 사이릭스사의 다른 상품보다 원칩 CPU인 MediaGX등을 밀어주었다. 네셔널 세미컨덕터가 과연 인텔과의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는지는 불명이지만, 다른 경쟁자가 없던 MediaGX는 분명 시장에서 더 안정적인 경쟁이 가능하도록 해 줄 것으로 보였었다.

불행히도,네셔널 세미컨덕터는 사이릭스를 합병하고 나서 곧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또한, 이 문제는 사이릭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1999년에, AMD와 인텔은 450Mhz대의 CPU들로 경쟁을 하고 있었으나 사이릭스는 1년동안 PR-300을 PR-333으로 개선하는 이상의 발전은 하지 못하였다. 두 칩 다 속도는 300Mhz에 미치지 못하였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버스가 아닌 83Mhz버스를 사용하였는데, 소켓 7 마더보드들이 고정된 디바이더들을 사용하게 됨으로서 MII의 83Mhz버스는 PCI버스들을 41.5Mhz로 오버클럭시키는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많은 PCI버스들을 작동 불능 혹은 오작동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몇몇 마더보드들은 1/3디바이더를 지원해 27.7Mhz로 PCI버스를 지원했으나, 이는 시스템의 성능을 저하시켰다. 이 문제는 몇몇 마지막 모델들에서나 개선되었었는데, 그들은 100Mhz의 버스를 가졌었다. 거의 모든 6x86 CPU들은 강한 발열을 일으켰으며, 정상작동을 위해 당시치고는 꽤 큰 힛싱크와 팬을 요구하였다. 1996년에 성능으로 인정받던 사이릭스는 중급기로,또 엔트리기로 떨어지고, 결국 이 엔트리급 성능을 잃으면서 시장을 완전히 놓치게 될 위기에 다달았다.

마지막 사이릭스의 CPU는 MII-433GP였으며 300Mhz로 가동하였었고, AMD K6/2-300보다 부동소수점연산이 빨랐었다. 하지만 이 CPU들은 PR레이팅된 433Mhz의 CPU들엔 결국 미치지 못하였었다. 결국 네셔널 세미컨덕터는 CPU시장을 포기하였고, 사이릭스사의 기술자들은 흩어졌다. 이때 즘 사이릭스는 VIA에 판매되었고, MII를 위한 시장은 결국 소멸되었다. VIA는 Centaur Technology가 개발한 칩들에 사이릭스의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비아가 사이릭스가 센타우라나 VIA보다 더 이름값이 높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이릭스의 실패는 센타우르 테크놀로지의 글렌 핸리 CEO가 논한 적 잇는데, "사이릭스는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었으나 거품덩어리인 회사에게 흡수됨으로서 결국 망하게 되었다. 비아가 사이릭스를 살 쯔음에 네셔널 세미컨덕터가 400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60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보다 우리가 더 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네셔널 세미컨덕터는 MediaGX 지오드로 재명명해 내장CPU의 판매를 기대하며 몇 년간 더 제작하다가, 결국 AMD에 2003년에 이마저 판매하였다.

2006년 6월, AMD는 x86에 호환되는 0.9와트만 먹는 초저전력 CPU의 베일을 벗겼었는데, 이가 지오드 코어 기반으로, 이는 결국 사이릭스사의 아키텍쳐가 남아있는 마지막 물건이 되었다. 

사이릭스가 단명하였고 결국 브랜드명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사이릭스와 인텔의 경쟁은 저가형 CPU의 길을 였었고, 이는 컴퓨터의 가격을 내렸고 인텔이 셀러론 브랜드를 발표하도록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사이릭스를 삼으로서 비아는 인텔과의 법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x86프로세서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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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엘피

2009.09.02 19:50:03
*.11.143.180

제가 Cyrix 486DX-66과 Cyrix 6x86-133을 사용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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